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트해 전역 (문단 편집) ==== 아이스 슈토스(얼음 타격) 작전 ==== 1942년 4월 [[루프트바페]]가 발트 함대에 공격을 가한 작전이다. 소련의 발트 함대의 지원포격은 분명 독일 육군에게 부담이 되었고 독일 공군은 네베이에 주둔하고 있던 이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당시 네베이는 아직 얼어 있어 소련 발트 함대가 원활한 기동을 하지 못했고 독일은 이를 파악하여 얼음이 녹기전에 발트 함대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1942년 3월 28일에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이 작전은 [[https://ru.m.wikipedia.org/wiki/1-й_авиационный_корпус_(люфтваффе)|제1 항공대]] 헬무트 페르스터 공군 장군에 의해 실행됐다. 1942년 3월 26일 제 1항공대는 폭격기를 대기시킨다.또한 네베이의 소련 발트 함대의 위치를 확인하고 한 호수에서 소련 선박을 닮은 연습 표적을 만들어 훈련을 한다. 독일 공군은 우선 목표를 [[강구트급 전함]]과 [[키로프급 순양함]]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1톤에 달하는 폭탄들이 보급됐다. 독일 포병들은 공군을 지원하기 위해 레닌그라드에 위치한 대공포와 소련 발트 함대와 항구를 포격할 준비를 하고 소련 공군에 대비해 대공포도 준비한다. 한편 소련은 레닌그라드 방공 부대를 강화하기 위해 화기지원과 재편성을 개시했고 발트 함대를 엄호할 전투기들을 배치시킨다. 그리고 소련 정보 부대가 독일 공군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독일군이 만든 소련 해군의 군함을 닮은 연습 표적을 발견하자 함대의 배치를 바꾸고 더욱 넓게 포진시킨다. 그리고 1942년 3월 31일 이후로 레닌그라드에 배치된 모든 부대는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1942년 4월 4일 독일 공군의 항공기 191대가 3그룹으로 나누어 공중 추돌을 막기위해 녹색 불을 키고 19시간 동안 발트 함대에 공습을 개시한다. 소련 발트 함대의 군함중 직접적으로 폭격을 받은건 키로프 순양함 한 척 이었고 키로프 순양함의 갑판과 보트에 폭발이 일어났다. 이 폭발로 인해 근처에 있던 두척의 순양함이 손상을 입었다. 또한 6척의 군함이 파편등에 의해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독일 폭격기들은 대다수가 레닌그라드 주거 지역을 폭격했고 이로 인해 116명이 사망하고 311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소련 공군은 늦은 출격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채 전투기 4대를 잃었다. 독일 공군은 약 10대가 손상되는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4월 5일 독일 공군의 폭격기 31대가 [[강구트급 전함]] 10월 혁명호를 폭격했고 민간인 포함 5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한다. 독일 공군은 마라 폭격 이후 한번 더 공습을 개시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작전을 검토한 결과 작전 효율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https://en.m.wikipedia.org/wiki/Georg_von_Küchler|퀴흘러]]의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3580947&cid=59016&categoryId=59023|데미얀스크 전투]]의 지상군 지원 요청이 들어오자 세 번째 공습은 취소한다. 그러나 독일 공군은 포기하지 않았고 데미얀스크 가도가 열리면서 제 2군단이 포위에서 풀려나면서 독일군 지상군의 상황이 나아지고 [[히틀러]]의 소련 선박 공격 촉구로 독일 공군은 다시 한번 소련 발트 함대에 공습을 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 작전을 개시한다. 이 작전에서 독일 공군은 전술에 변화를 주는데 소수의 폭격기로 다양한 방향에서 정밀하게 공격하고 구름을 이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전술은 소련군의 기존의 대공망이 예상하지 못한 전술이었고 그 결과로 발트 함대는 위험에 빠진다. 1942년 4월 24일 폭격기 62대와 전투기 28대가 3시간 동안 첫 번째 공습을 개시한다. 10월 혁명에 25개의 항공 폭탄이 떨어져 2개의 대형 대공기관총이 파괴되었고 2척의 구축함, 트럭 2대, 경비함 5척, 보조함 1척이 항공 폭탄 15대와 기총 100대를 맞아 피해를 입어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키로프 순양함의 피해가 컸는데 폭탄 3개를 직격으로 맞아 예비 지휘 구역이 파괴되고 일부 파이프 라인이 파손되는 등 여러 시설이 파괴되었고 탄약 저장고에 불이 번져 유폭이 나서 피해가 커졌다. 포 6문과 대공 기관총 2기가 파괴되었고 86명이 사망하고 46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 3개의 해안포와 군항과 군수 공장등 여러 군사 시설 건물과 발트 함대 지휘소도 공습을 가했다. 이로 인해 주택 36채가 파괴되었고 민간인 포함 117명이 사망하고 34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전투에서 소련은 20대의 항공기를 격추했고 14기를 파손시켰다고 보고했다. 독일은 이 공습에서 2기를 잃었다고 한다. 이 공습에서 심각하게 파괴된 [[키로프급 순양함]] 키로프는 막심 고리키와 같이 즉각 예인되어 독일군의 공습 순위에서 낮은 다른 배들 사이로 이동되어 이들과 같게 보이기 위한 위장을 했다. 또한 이들의 취약해진 대공 능력을 보조하기 위해 주변에 대공 화기가 강화되었다. 4월 25일 독일은 40대의 폭격기로 2차 공습을 가했다. 독일 공군은 촘촘하게 배치된 소련의 대공 화기로 인해 우선 폭표 순위에 쉽게 도달하지 못했고 보로시롭그 여객선과 선박 1척을 침몰시겼다. 소련군은 이 공습에서 독일군 폭격기 17대를 격추했다 주장했지만 독일은 1대도 잃지 않았다고 한다. 4월 27일 독일은 40대의 폭격기와 15대의 전투기가 3차 공습을 가했다. 순양함 막심 고리키의 피해가 컸고 키로프 주변 선박 여러대가 침몰했다. 해안에 배치된 대공 진지 2개도 파괴되었다. 4월 30일 마지막 공습에서 독일은 일부 배를 소파 시킨거 외에는 전과를 올리지 못했으며 소련군 사망자는 없었다. 독일은 폭격기 한대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 공습으로 소련군은 전함 10월 혁명과 순양함 막심 고리키, 잠수함과 잠수정 8척 구축함 2척이 피해를 입고 [[키로프급 순양함]]이 대파되고 보조선 3척과 잠수함 3척을 잃었다. 또한 소련군은 자신들의 공습 대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독일 공군은 총 596번 출격했고 폭탄 500톤을 소비했으며 피해는 자료마다 다양한데 소련측은 25대~60대의 독일 항공기가 손상되거나 격추되었다고 하고 독일측은 총 2대만 격추 되었고 10여대가 파손 되었다고 한다. 독일측의 자료가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